이국종교수의 ‘권역외상센터’귀순병사 구했지만…“갈 길 멀다”
중증외상환자가 외상센터 대신 응급의료센터 찾는 경우 많아






공동경비구역(JSA)을 통해 귀순하다가 총상을 입은 북한 군인이 아주대병원 이국종 교수의 치료를 받고 의식을 되찾은 것으로 확인되면서 이 교수가 몸담은 권역외상센터가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권역위상센터에 대한 국민적 찬사도 이어지지만 의료계에서는 운영난에 인력난까지 겹쳐 센터의 역할이 아직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 기회에 전반적인 시스템 개선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권역외상센터는 생명이 위독한 외상환자가 왔을 때 10분 이내에 처치할 수 있도록 외상외과, 신경외과, 응급의학과 등으로 구성된 전문 외상팀이 365일 24시간 상주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환자의 소생 및 초기 처치는 물론 응급시술이나 수술에 이르기까지 통합적이고 필수적인 치료를 즉각적으로 제공하는 게 목표다. 2011년 1월 석해균 선장 사건으로 외상에 대한 대국민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후 손상으로 인한 사망을 줄이자는 취지로 권역외상센터 설치사업이 시작됐다. 

23일 의료계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외상으로 인한 사망 중 적절한 치료가 이루어졌다면 생존할 수 있었을 ‘예방 가능 외상사망률’은 2010년 기준으로 35.2%에 달했다. 이는 미국, 독일, 일본의 10∼20%에 견줘 2∼3배에 달하는 수치다.’ 복지부는 2012년 이후 지금까지 전국에 16개 권역외상센터를 선정했으며, 이 중 9곳이 현재 운영 중이다. 권역외상센터로 선정되면 시설·장비 구매비로 80억원을 받고, 연차별 운영비로도 7억~27억원을 지원받는다. 

외상사업관리단 자료를 보면 올해 6월 기준으로 권역외상센터에는 전문의 226명(기관당 9∼23명) 외상코디네이터 39명, 간호사 829명이 근무하고 있다. 지난해 권역외상센터를 찾은 외상환자 중 중증 비율은 18.9%에 달했다. 하지만 이런 권역외상센터가 아직 제 역할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많다. 우선 국민과 응급의료 종사자들에게 외상센터에 대한 인지도가 높지 않아 권역외상센터와 응급의료센터의 역할이 명확히 구분되지 않음으로써 병원 전 단계에서 환자이송체계가 효율적이지 못하고, 중증외상환자가 권역외상센터로 집중되지 못한다는 점이다. 

예컨대 외상팀의 체계적인 대응이 필요한 중증외상환자들이 외상센터를 두고도 응급의료센터를 먼저 방문함으로써 환자가 넘치는 응급실에서 신속한 진단과 적절한 초기 처치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실제로 혈관조영색전술 등의 응급시술, 수술적 치료 및 중환자실 집중치료도 지연되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조현민 부산대병원 권역외상센터 외상중환자외과 교수는 “중증외상환자가 응급의료센터나 응급의료기관을 먼저 찾을 경우 제한된 시간 내에 생존에 필수적인 기본 처치를 받지 못하고, 불필요한 검사나 진단에 치중한 나머지 전체적인 외상진료의 흐름이 끊어지면서 적절한 진료가 시간 내에 시행되지 못할 수 있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로 인해 중증외상환자가 권역외상센터에 전원 됐을 때는 골든타임(황금시간)이 지나 소생불능 상태에 빠지게 된다”고 강조했다.’ 또 중증외상이 중증도 평가에서 낮은 등급으로 분류돼 있어 외상환자를 많이 진료할수록 상급종합병원 평가에서 불리한 점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한호성 분당서울대병원 외과 교수(전 대한외상학회장)는 “권역외상센터는 근본적으로 정부로부터 한정된 재원을 지원받기 때문에 재정 자립이 어려운 상태”라며 “더구나 선정 당시에는 병원 경영진이 외상센터 운영지원에 적극적이었지만, 갈수록 운영의 책임감과 경영철학까지 약해져 권역외상센터 운영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고 말했다. 

권역외상센터의 필수 충족요건인 전담외상인력이 많이 부족하고, 이미 확보된 전담인력에 대해서도 처우가 열악한 것도 문제점으로 꼽힌다. 이와 함께 병원 전 단계 치료에서 이송에 이르기까지의 과정 중에 포괄적인 진료 협력이 어렵고, 즉각적인 치료와 고도의 전문성을 요구하는 소아외상, 미세접합수술, 심장대동맥수술 등의 특수분야 외상치료도 아직은 미흡한 부분으로 지적되고 있다. 한 교수는 “우수한 한국형 외상진료시스템을 만들려면 정부, 중앙응급의료센터, 대한외상학회, 권역외상센터 등이 유기적으로 협동해야 한다”면서 “또 의료수가를 현실화하고 권역외상센터의 재정 자립을 도모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 교수는 이어 ▲ 외상 관련 의료인력(의사, 간호사, 코디네이터, 소방 등)에 대한 교육 및 지원 확대 ▲ 중증외상환자 집중화가 이루어질 때까지 외상센터 전담인력이 비외상 응급수술을 할 수 있도록 할 것 ▲ 한국외상데이터뱅크 외상등록체계에 권역외상센터 외의 모든 외상환자가 등록될 수 있도록 확대할 것 ▲ 중앙응급의료위원회와 별도로 중앙외상위원회(가칭)를 신설할 것 등을 주문했다.  | 김길원 기자





“권역외상센터 추가 지원해야”…靑 청원 9만명 돌파

이국종 아주대병원 중증외상센터장(교수) 등이 소속된 권역외상센터에 대한 지원을 확대해달라는 청원에 9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호응하고 있다. 22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현재 진행 중인 ‘권역외상센터(이국종 교수님) 추가적, 제도적, 환경적, 인력 지원’ 청원에 이날 오후 5시 42분 기준 9만684명이 참여했다. 

청원인은 이 교수가 병원 인근 구청으로부터 환자 이송용 헬기소음 민원에 대한 공문을 받는 현실이 한탄스럽다며 의료시스템의 문제와 개선 방안이 필요하다고 촉구했다. 그는 “이 교수는 왼쪽 눈이 거의 실명 상태에 이를 정도라고 들었다”며 “(이처럼) 타인의 목숨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건강을 희생하고 있는데도 이 교수 뿐 아니라 타지역 권역외상센터도 소속 병원의 눈치를 본다고 한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환자를 치료할수록 병원의 적자가 증가하기 때문이다.

죽어가는 생명을 치료하는 의사의 본업과 사명을 수행하는 데 상부와 주위의 눈치를 봐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의대생들이 외과, 흉부외과를 포기하는 데에는 단순히 돈 문제뿐만 아니라 국가의 제도적 지원이 미비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어 “희생만을 바라는 게 아니라 그들이 환자를 눈치 보지 않고 치료할 수 있게, 하루에 한 번은 잠을 잘 수 있게, 최소 보편적 삶을 살면서도 자신의 사명감을 지킬 수 있게 되기를 진심으로 청한다”고 끝맺었다. 

청와대 청원이 30일 동안 20만명 이상 추천을 받을 경우 정부, 청와대는 답변을 해야 한다. 이 교수는 ‘아덴만 여명작전’에서 해적의 총에 맞은 석해균 선장을 치료했던 중증 외상치료 전문가다. 북한군 귀순 병사의 수술과 치료를 맡으며 다시 한 번 주목받았다. 그러나 귀순 병사의 몸에서 기생충을 발견한 사실 등을 공개하자 김종대 정의당 의원으로부터 ‘인격 테러’라는 비판을 들었다. 이에 이 교수는 이날 자신을 포함한 의료진은 환자의 목숨을 구해 그의 인권을 지켰을 뿐이라고 강조하며 김 의원의 비판에 우회적으로 반박했다.  | 김잔디 기자




글쓴날 : [17-11-30 13:40]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신문관리자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