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안부 첫 보도' 전 일본기자 "한일합의는 끝 아닌 시작" | |
|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한국어판 낸 우에무라 다카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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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10억엔)만 내면 국제사회도 비방하지 말라, 그게 말 이 됩니까. 저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걸 계기로 (위안부 문제 해결을) 시작해야 하는데 시작하자마자 끝내자 고 하는 거죠." 1991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의 증언을 처음 보도한 전 아 사히(朝日)신문 기자 우에무라 다카시(植村隆·57)의 말이다. 저서 '나는 날조 기자가 아니다' 한국어판(푸른역사)을 출 간한 우에무라는 한국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지난해 12월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를 강하게 비판했다. 그는 "위안부 피 해자들의 목소리를 듣지 않고 일방적으로 했다. 돈만 내면 문 제 끝"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우에무라는 책에서 당시 기사가 날조라는 주장에 반론을 제 기하고 자신과 가족에게 들이닥친 시련을 담담하게 기록한다. 우에무라는 김 할머니 본인이 말하지 않은 '정신대' 경력을 기사에 더했다는 주장에 대해 "당시 한국에서 정신대가 사실 상 위안부와 같은 의미로 사용됐다"고 말했다. 정대협의 단체 명 자체에 이런 인식이 반영됐고 당시 한국 언론의 기사들도 마찬가지다. 김 할머니가 강제로 동원된 것처럼 묘사했다는 지적에도 반 박했다. 당시 기사에는 '속아서 위안부가 됐다', '위안소로 끌 려갔다'는 표현이 있지만 강제연행에 대한 언급은 없다. 오히려 우에무라를 공격한 산케이신문이 김 할머니의 기자회견을 보 도하면서 '일본군에게 강제적으로 연행되어'라고 명기했다. 위안부 문제를 부정하는 일본 우익은 우에무라에게 갖은 협 박을 했다. 주간지 '주간문춘'은 2014년 우에무라의 기사가 날 조였다고 비판하고 ''위안부 날조' 아사히신문 기자가 아가씨들 의 여자대학 교수로'라는 제목의 기사도 냈다. 그가 부임할 예 정이던 고베쇼인(神戶松蔭)여자학원대학은 우익들의 항의·협 박에 채용을 취소했다. 시간강사로 일하던 호쿠세이가쿠엔(北星學園)대학에도 협박이 계속됐다. 20년도 더 지난 기사를 향한 공격은 아베 정권 등장과 일본 사회의 우경화에 힘입은 바가 크다. 우에무라를 희생양 삼아 분풀이하는 양상이다. 그가 "나의 개인 문제가 아니라 용기를 내어 증언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에 대한 명예훼손이자 위 안부 문제에 관심 있는 저널리스트를 협박하기 위한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다. 우에무라는 실제로 일본 기자들이 과거에 비해 위안부 문제 를 비중있게 다루지 못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올해 초부터 가톨릭대 초빙교수로 1주일에 3시간씩 학 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도쿄와 삿포로에서 진행 중인 명예훼 손 소송을 위해 두 나라를 바쁘게 오가는 중이다. 지난달 초 에는 재수생인 딸이 인신공격을 가한 중년 남성을 상대로 배 상 판결을 받았다. 그가 가톨릭대에서 맡은 강의 이름은 '동아 시아 평화와 문화'. 우에무라는 "마지막에는 나의 재판에서 승 리한 결과를 한국의 여러분께 전할 수 있는 날이 올 것이라 믿 는다. 앞으로도 일본과 한국의 젊은 세대들이 우호관계를 맺 도록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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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날 : [16-11-01 12:22] |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