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택받은 고위직층 부패 심각…희생 실천하는 사람 없어"
'특혜와 책임' 출간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인터뷰 "한국, 중진국 함정에 빠져…노블레스 오블리주만이 성장 동력"

'특혜와 책임' 출간한 송복 연세대 명예교수 인터뷰
"한국, 중진국 함정에 빠져…노블레스 오블리주만이 성장 동력"


"소득도 높고, 권력도 세고, 명예도 있는 고위직층은 혜택받은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높은 자리에 오르는 데는 다른 사람의 희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국 고위직층은 사회에 기여하기는커녕 부패한 사익집단처럼 행동하고 있어요."

계층이 고착화하는 사회를 냉소적으로 빗댄 '헬조선', '금수저' 등의 신조어가 회자하는 현실에서 원로 사회학자인 송복(79) 연세대 명예교수가 작심하고 한국 고위직층의 행태를 비판한 책 '특혜와 책임'을 펴냈다.

서울 광화문에서 지난 2일 만난 송 명예교수는 인터뷰를 하는 동안 수차례 고위직층에 책임의식과 희생정신이 없다고 꼬집었다. 그는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배층의 도덕적 의무)라는 용어를 자주 입에 올리기도 했다.

보수 성향의 송 명예교수가 고위직층에 직격탄을 날린 이유는 이대로 가다가는 '대한민국'이라는 거대한 배가 침몰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서다.

송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상층(上層)을 '뉴 하이'(New High)와 '뉴 리치'(New Rich)로 구분했다. 뉴 하이는 정치·사회·문화 권력을 쥔 사람들이고, 뉴 리치는 대기업가를 지칭한다.

그가 특히 문제시하는 사람들은 뉴 하이 중에서도 핵심에 있는 '위세(威勢) 고위직층'이다. 위세 고위직층에는 국회의원, 고위 관료, 고위 법조인 등이 속하며, 이들은 기업이 생산하거나 국민이 낸 돈과 자원을 배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송 명예교수가 보기에 위세 고위직층은 운 좋게 좋은 대학을 나와 고시를 통과한 행운아들이다. 그런데 그들이 현재의 자리가 노력의 산물이라고 착각해 나라를 망치고 있다는 것이 송 명예교수의 분석이다.

"대학 입학 성적을 살펴보면 붙은 사람이나 떨어진 사람이나 다 커트라인 근처에 몰려 있어요. 점수 차가 크지 않다는 말입니다. 탈락자도 피땀 흘려 노력한 것은 마찬가지예요. 합격자는 단지 운수가 좋았던 겁니다. 그러면 소명의식을 갖고 떨어진 사람 몫까지 일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는 위세 고위직층의 세태를 맹자에 나오는 구절 '탐위모록'(貪位慕祿)에 빗댔다. 나라와 국민은 보지 않고 지위와 봉록만 탐한다는 뜻이다.

송 명예교수는 우리나라의 뉴 하이와 달리 선진국에서 오랫동안 상층을 차지해온 '올드 하이'(Old High)는 문화와 윤리가 내면화돼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문화는 지식과 상식, 윤리는 도덕과 규범을 의미한다"며 "올드 하이는 무의식적으로 행동해도 교양이 몸에 배어 있고, 술에 취하거나 화가 나도 감정을 절제한다"고 말했다.

올드 하이의 또 다른 특징은 희생이다. 희생은 나라가 위태로우면 목숨을 먼저 내놓고, 기득권을 내려놓으며, 일상생활에서 남에게 양보하는 행동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우리 고위직층은 희생하지는 않고, 횡포를 일삼거나 일반인을 비하하는 발언을 해 논란을 빚기 일쑤다.

송 명예교수는 "평소 아랫사람에게 오만하고 폭언을 하는 고위직층은 자식들에게 돈과 지위뿐만 아니라 몰상식과 비합리성을 물려준다"며 "조만간 우리나라는 상층을 향한 분노로 가득한 사회가 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욕 많이 먹으면 오래 산다는 말 있죠. 사실이 아닙니다. 빨리 죽어요. 악담이 많으면 뼈도 녹는다는 '적훼소골'(積毁銷骨)이란 고사가 왜 있겠습니까. 상층이라면 존경을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의 상층은 항상 무책임하고 희생정신이 없었을까.

송 명예교수는 "황산벌에서 홀로 적군에 뛰어든 관창처럼 신라에는 희생을 실천한 화랑이 있었다"며 "백제와 고구려가 패망한 것은 상층이 분열하고 부패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우리나라가 선진국 문턱에서 위로 올라가지 못하는 '중진국 함정'에 빠져 있다고 진단하면서 "경제 성장의 동력은 정치가 아니라 노블레스 오블리주, 즉 고위직층의 의식 혁신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정치의 역할에 대해서는 "요즘 정치인은 표를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꼬집은 뒤 "대통령 잘 뽑으면 경제가 살아날 것이라는 희망은 하지 말아야 한다"고 잘라 말했다.

내년이면 팔순이 되는 송 명예교수는 "한 가지 주제에 대해 쓴 단행본은 '특혜와 책임'이 마지막이 될지 모른다"면서도 '리더십 인문학'이라는 책을 구상 중이라고 귀띔했다.

"우리나라 리더들이 말하는 것을 보면 어휘력과 표현력이 너무 떨어져요. 인문 서적을 읽지 않고 수험서나 실용서만 들여다봐서 그래요. 고위직층에 인문학적 교양이 생기면 생각도 바뀌지 않을까요."

글쓴날 : [16-10-12 10:47]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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