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년 만의 위기' 맞은 강원 영월 명품 고택 '조견당'
지역 주민 "문화재에만 왜 혈세 쏟아붓나…건축규제 풀어달라" "이기심으로 뭉친 민원인 눈치 보기로 문화재 해제 안 돼"

지역 주민 "문화재에만 왜 혈세 쏟아붓나…건축규제 풀어달라"
"이기심으로 뭉친 민원인 눈치 보기로 문화재 해제 안 돼"


'김종길 가옥 국가지정문화재 신청 즉각 철회하라' '주천 발전 저해하는 김종길 가옥 문화재자료 보호구역 해제하라'

200년 역사에다 건축물 짜임새가 독특하고 아름다워 강원 영서지방의 대표적 고택으로 널리 알려진 강원도 영월군 주천면 '조견당(照見堂)'을 찾아가는 길목 곳곳에 내걸린 대형 플래카드이다.

대지 600여 평에 안채와 사랑채, 넓은 마당과 대청마루, 수령 500년이 넘은 아름드리 밤나무와 배나무, 수많은 고가구와 민속품 등…

한 마디로 기품을 느끼게 하는 이 '명품 고택'은 그러나, 요즘 문화재 해제 논란으로 어수선하다.

◇ 기역자 기와집에 넓은 마당·대청마루…문광부 '명품 고택' 지정

1827년(순조 27년) 지어져 7대째 내려오는 조견당은 1985년 강원도문화재로, 2014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명품 고택'으로 지정됐다.

코레일관광상품에 포함돼 전국의 관광객들이 몰리기도 했다.

기역자 형태 한옥 기와지붕 합각(合角)에 조형된 해·달·별의 음양에 대한 이치가 매우 독창적일 뿐만 아니라, 동쪽 벽에 만들어진 화방벽은 어느 고택에서도 쉽게 찾아보기 어려운 '오행사상'을 건축적으로 표현한 매우 희귀한 자료로 평가된다.

서쪽 부엌 방향 5칸 벽면의 문살과 벽체의 공간배치가 아름다워 고건축과 디자인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필수코스이기도 하다.

주인 김주태(57) 씨의 부친 이름을 따 '김종길(金鍾吉) 가옥'으로도 불리는 조견당은 장사로 큰돈을 모은 김 씨의 7대조 할아버지가 지은 것으로 알려졌다.

목재와 자재를 구하는 데 3년, 집을 짓는 데 6년이 걸려 9년 만에 120여 칸의 집을 완공했지만, 일제강점기와 6·25전쟁을 거치면서 건물 대부분이 폭격으로 소실됐고 안채만 남았었다. 이후 2007년 사랑채를 복원했고, 2009년에 별채를 신축했다.

3년에 걸쳐 40칸 규모로 지으려던 것이 '영월 김 부자 집에서 집을 짓는다'는 소문을 듣고 전국 각처에서 몰려온 어려운 사람들을 물리칠 수가 없어 구휼 차원에서 인부로 고용, 9년에 걸쳐 120칸 규모로 공사가 커졌다는 것이다.

안채의 아치형 대들보는 당시 800년 된 소나무를 깎아 상량한 지 200년이 지나 현존하는 국내 고택 가운데 가장 큰 대들보로 유명하다.

이러한 이유로 1985년 강원도 문화재자료(제71호), 2013년에는 문화체육관광부 '명품 고택'으로 지정돼 연간 3만 명가량의 관광객이 몰리고 있다.

◇ "문화재에만 왜 혈세 쏟아붓나…우리도 풀어달라"

조견당은 그러나 현재 200년 만의 큰 위기에 몰려 있다.

우선 200년 전통을 가졌지만, 지반침하에 따른 건축물 붕괴위험이 큰 상태다.

조견당과 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 등에 따르면 조견당은 지반침하로 뒤쪽으로 약 5도, 동쪽으로 약 3도 기울어진 상태다.

1991년과 2000년 보수공사가 있었지만, 당시 지붕의 기와를 교체하면서 기와의 하중이 커져 건물이 기울고 있다.

안채 처마 끝에 매단 추와 저절로 열리는 여닫이문 등이 그 심각성을 눈으로 보여준다.

하중을 줄이고 기울어진 기둥을 바로 세우는 응급조치가 시급한 실정이다.

조견당의 상태가 이럼에도 보존을 가로막는 걸림돌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고택에 이상이 발생한 2014년과 지난해 강원도비 2억 원, 영월군비 3억 원 등을 확보해 추진되던 복원공사는 영월군의회의 반대로 심의를 통과하지 못했다. 개인 소유 재산에 너무 많은 군비가 들어가고 조견당 주변 주민들 반대여론이 주된 이유였다.

조견당으로 인한 건축물 고도제한 등으로 피해를 받아온 주민들의 문화재 해제 요구도 거세다.

주민들은 최근 주천면문화재해제비상대책위원회를 결성, 지난달 25일 조견당 주변과 주천면 시가지에 문화재 해제를 촉구하는 대형 현수막 20여 개를 내거는 한편 해제 당위성을 알리는 가두홍보전까지 펼쳤다. 조견당 앞에서 시위까지 벌였다.

대책위 남기영 위원장은 "당초 문화재로 지정된 안채는 관리도 제대로 하지 않고 방치한 채 막대한 예산으로 행랑채 등을 지은 뒤 전통한옥체험으로 영리에만 치중하고 있다"면서 "밑 빠진 독에 물붓기식 문화재 관리만 하지 말고 문화재 인근 주민들의 건축규제도 풀어줄 것"을 요구했다.

그는 또 "가치가 있는 문화재라면 소유주 스스로가 애정을 갖고 유지·관리를 해야 한다"며 "뒤늦게 문화재 붕괴 운운하며 다시 5억 원을 요청해 보수하겠다는 발상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 "조견당 지켜야…민원인 눈치 보기로 해제한다면…"

이에 대해 조견당을 지켜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전국 650여 개 고택문화재를 대표하는 단체인 사단법인 고택문화재소유자협의회는 성명을 통해 "영월군의회의 반대로 2015년 이뤄져야 할 공사가 지금까지 이뤄지지 않아 문화재는 점점 더 기울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자신의 고장에 있는 문화재를 지키고 보존하는 데 누구보다 앞장서야 할 군의원들이 무슨 생각으로 보수공사를 반대했는지 알 수 없다"고 질타했다.

문화재 주변 주민 피해에 대해서도 "이미 문화재 주변을 1,2,3 구역으로 나눠 건축규제를 일부 해제한 바 있다"며 주민들의 문화재 해제 요구를 일축했다.

협의회는 또 "영월군이 소중한 문화재가 붕괴위험에 처한 현실을 군의원들의 반대 탓으로만 돌리고 있다"고 주장하고 "군이 이기심으로 똘똘 뭉친 민원인들의 눈치 보기로 문화재를 해제한다면 두고두고 역사에 수치스럽게 기록되고 전 국민의 비난 대상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향후 조속한 문화재 보수공사가 이뤄지지 않을 경우 문화재를 사랑하고 아끼는 국민을 상대로 '영월군 문화재 지키기 운동'을 전국적으로 펼쳐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문화재 장인과 지역 문화 기획자, 건축가 등을 중심으로 한 '조견당 지킴이' 모임도 결성돼 조견당 복원을 위한 장기적인 계획 추진과 정기적인 모임을 개최키로 했다.

조견당 주인 김주택 씨는 "살던 집이 문화재로 지정돼 여러 가지 불편이 큰데, 문화재로 인해 피해를 보는 주민들의 민원 화살까지 집주인이 맞아야 하는 문화재 정책이 아쉽다"며 정부 차원의 해법 모색을 촉구했다.

한편 강원도는 지난 1일 강원도 문화재위원회를 개최, 조견당 문화재 해제와 관련한 찬성·반대 측 주장을 청취, 조만간 존치 또는 해제를 결정할 것으로 알려졌다.

글쓴날 : [16-10-12 10:44]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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