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수도관 안묻었다, 도로 다시 뜯어내자’…세금 줄줄 샌다
춘천 외곽순환도로, 인천 월미은하레일, 천안 물류센터…대표적 세금낭비 사례 시민단체, 납세자 소송 도입 등 극약 처방해야
잘 닦인 포장도로가 3년도 되지 않아 다시 뜯긴다. 중복투자에 예산 낭비가 반복되는 ‘고질병’에 처방전이 없다.
‘전임자 업무’ 혹은 ‘당시 상황’ 등 핑계 대기만 급급하다.
단체장 ‘치적 쌓기용’ 부풀린 기대효과에다 공직사회 안이한 관행, 솜방망이 처벌의 악순환 고리가 줄줄 새는 혈세를 막아내지 못하고 있다.
◇ ‘내 돈 아닌데 일단 하고 보자’…2년 앞도 못 내다보는 행정
강원 춘천시는 수백억 원이 투입되는 외곽 순환도로를 만들면서 기반시설을 매설하지 않았다.
기껏 잘 닦고 포장한 왕복 6차선 도로를 채 3년도 되지 않아 1km 구간을 뜯어내야 한다.
신 주거 단지로 주목받는 장학리 교차로 주변부터 만천리 춘천여고 일대 도로를 2013년 11월과 2014년 6월에 각각 준공했지만 다시 파헤쳐야 한다.
처음 공사할 때 상수도관과 우수관을 매립하지 않아서다.
모두 30억 원가량의 혈세가 추가로 들어간다.
책임지는 사람은 없다. 지난 2008년 도로 착공 당시에 도로와 수도, 하수를 담당하는 3개 부서가 제각각 사업을 추진해 내 책임이 아니라는 변명뿐이다.
도로 공사 따로, 지하 관로 매설 공사 따로 하는 중구난방 조치에 세금을 낸 시민들로서는 황당하다. 500억 원이 넘게 투입된 6차선 도로 주변에 건물을 지은 시민들은 수돗물조차 사용하지 못할지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원모(41) 씨는 “세차장 사업을 위해 이 일대 토지를 매입했는데, 전기 배관선이나 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이 없다”면서 “인허가 과정에서도 아무런 이야기를 듣지 못했다”고 전했다.
원 씨는 결국 800만 원을 들여 지하수를 파는 등 추가적인 비용을 들여야 했다.
춘천시 관계자는 “도로 개설 당시에는 주변에 주택단지 등 개발 여건이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상하수도관을 매설하지 않았다”라고 해명했다.
인천시는 인천교통공사를 통해 853억 원을 들여 월미도 일대에 관광용 모노레일인 월미은하레일을 2010년 6월 완공했다.
하지만 시험운행 과정에서 안전성 문제가 제기돼 수년째 개통하지 못해 대표적 예산 낭비라는 지적을 받는다.
모노레일 차량을 소형으로 줄이고 안전성 논란 일었던 ‘Y’자 레일을 ‘I’자형 궤도로 바꿔 올해 8∼9월 개통을 목표로 사업을 재추진하고 있다.
◇ 미흡한 사업성 검토에 취소·중단…애물단지로 방치
부산 해운대구의 경우 지난해 미포 일대를 매립해 복합관광단지를 유치하겠다며 사업 추진에 나섰지만, 용역비 8천만 원만 고스란히 날리게 됐다.
일부 잔여매립지의 소유권이 국가에 있다는 법 내용을 숙지하지 못한 탓이다.
충북 영동군은 영동읍 매천리에 새로운 게이트볼장을 짓기로 하고 2013년 7필지(1만729㎡)를 14억2천800만 원에 사들였다. 부족한 공간은 인접한 국유지 6천300㎡를 임대했다. 하지만 지난해 사업부서인 영동군시설사업소가 매입부지 절반 넘게 체육시설을 설치할 수 없는 ‘보전녹지’라는 것을 뒤늦게 확인했다.
임대한 국유지도 ‘하천부지’로 운동시설이 들어설 수 없어 부랴부랴 사업을 중단했다.
부지 매입금(약 14억 원)과 설계용역비(5천500만 원)가 날아갈 위기에 놓였다.
제주에서는 곽지과물해변에 해수풀장 공사를 환경·관광지구 변경허가 없이 진행하다 사업을 접고 원상복구 조치하는 일이 벌어졌다.공정률 70%에 3억 원가량의 예산이 투입된 것으로 알려졌다.
울산시 울주군은 지난해 7억 원을 들여 서생면 대송항에 요트계류장을 조성했다.
요트계류장은 대송어촌계가 관리 운영하면서 민간기업인 요트업체가 사용하도록 협약했지만, 영업부진 등을 이유로 두 달여 만에 폐업해 애물단지로 방치되고 있다.
충남 천안시의 중부농축산물류센터는 수백억 원의 예산을 쏟아 붓고도 활용방안을 찾지 못한 대표적 예산 낭비 사례다.
충남도가 1999년 농축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명목으로 국비 278억 원 등 모두 519억 원을 들여 물류센터를 설립했지만, 날이 갈수록 적자만 쌓였다.
5년 만에 적자액이 500억 원에 달하자 충남도는 운영을 중단하고 부지 일부를 팔아 빚을 갚았다.
또 충남도가 물류센터를 임대료를 받는 방식으로 전환, 국고보조금 228억 원은 애초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아 반납했다.
유통회사의 보관창고로 쓰이는 건물은 용도가 제한적이고 외곽에 있어 매각 시도도 어려워 활용방안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 ‘정책실명제’ 유명무실…혈세 막는 납세자 소송으로 ‘극약 처방’
재정 운영에 문제점을 지적하는 시민단체는 납세자 소송제도를 극약 처방으로 제시한다.
법적 울타리를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다.
정창수 나라살림연구소장은 “주민들이 소송을 내 배상금을 받아낼 수 있도록 미국에서 시행 중인 납세자 소송을 도입해야 한다”라고 주장했다.
무조건 책임을 묻겠다는 게 아니라 예산 낭비에 대한 고의성 등이 발견될 경우에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2006년 처음 도입된 주민소송제도가 지나치게 엄격한 제한 조항 때문에 활용도가 떨어지고 재정 낭비 감독수단으로 제구실을 못 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데 대한 보완책이다.
국민이 예산집행을 평가하고 문제 제기하는 민주주의에 부합하고 예산절감 효과도 기대되지만, 남발 우려 목소리에 2002년부터 시작된 논의는 14년간 잠을 자고 있다. 유명무실화되는 정책 실명제도 손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부가 각 주요사업에 대해 정책을 기획하고 추진하는 책임자의 이름을 명시하도록 했지만, 형식적이고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잦은 인사와 보직 변경 등이 겹쳐 정책실명제에 명시된 담당자가 바뀌는 사례는 다반사다.
담당자가 최소 해당 정책의 안정화 단계까지는 책임을 지는 보완책 마련이 시급하다. 또 지방 중소도시에 이름만 거창한 정책실명제는 무관심이 일조하고 있다.
포상을 주는데 후덕하지만, 벌을 내리는 데는 인색한 공직사회 뿌리 깊은 풍토도 한몫했다.
부서 간 행정 보신주의나 편의주의 등을 만드는 ‘칸막이 행정’을 없애야 한다는 의견도 많다.
홍성구 강원대 교수는 “무조건 새로운 제도를 새롭게 신설하기보다 기존 제도를 다듬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무엇보다 세금을 낸 시민이 예산편성 과정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대안 마련부터 고민해야 한다”라고 말했다.
글쓴날 : [16-06-24 10:29]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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