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가 정답을 찾으려 하는데 옳고 그름은 사회에 따라 바뀝니다. 우리 사회가 변화해나가고 법률 논리도 이에 맞춰 진화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공직자의 부정부패를 척결하기 위한 '김영란 법'(부정청탁 금지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으로 널리 알려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첫 책 '판결을 다시 생각하다'(창비)를 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법관인 그가 2004년부터 6년간 대법관으로 재직하면서 내린 판결 중 10개를 추려내 그 의미와 배경, 논쟁의 과정을 꼼꼼하게 되짚은 책이다.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있는 그는 1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의 한 식당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 학기에 10개 정도 판결을 뽑아서 강의하는데 그 강의를 토대로 쓴 책"이라며 "학생들이 판결 요지만 간단히 외우는 식의 공부를 하게 될지 모른다는 노파심에서 그때 그 판결이 논쟁이 된 배경과 왜 그런 판결을 내렸는지, 우리 사회에서 중요한 이유를 적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언론 등을 통해 판결의 결론만을 접하는 일반인에게 각각의 판결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알려주고픈 마음도 있었다고 덧붙였다.
"유죄냐 무죄냐는 결론보다 그 결론에 이르는 과정, 어떤 생각과 토론 끝에 그런 결론이 났는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판결문이 길고 어렵다 보니 직접 판결문을 찾아보는 사람은 많지 않잖아요."
김 전 대법관은 이 책에서 우리 사회에 존엄사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불러일으킨 김 할머니 사건,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와 삼성SDS 신주인수권부사채의 저가 발행으로 지배권 세습과정 이슈를 부각시킨 삼성사건, 학생의 종교 자유 문제가 불거진 'K군 사건', 성 소수자의 기본권 보장 문제가 대두된 성별 정정 사건, 민법에 규정된 '제사주재자'를 어떻게 해설할지가 문제가 된 대법원 판결, 경제적 가치와 환경의 가치가 충돌한 새만금 사건 등 당시 사회에 파문을 불러일으킨 굵직한 사건과 판결을 되짚어봤다.
그는 자신이 재직하면서 관여한 판결 86건 중 당시 법률가가 아닌 일반인도 흥미를 느낄만한 10건을 선별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모두 대법원 재직 기간 치열하게 논쟁한 사건"이라며 "다수의견을 낸 것도 있고 반대되는 의견을 낸 것도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일반 독자에게 어려운 법 용어와 법 논리를 쉽게 전달하기 위해 외국 사례나 문학작품, 영화 등을 총동원했다.
판결 이후의 변화와 당시에는 밝힐 수 없던 개인적 견해나 비판, 반성 등도 담겼다.
그는 "어떤 면에선 스스로 부족한 게 더 없었나를 찾아보는 과정이기도 했다"며 "이 부분은 조금 더 깊이 생각해서 이런 논리로 (다른 대법관들을) 설득했으면 좋았을 텐데 라는 생각도 든다"고 말했다.
김 전 대법관은 "책을 쓰고 나니 '있을 때 잘하지 떠난 후에 회고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라고 할까 봐 두렵다"면서 웃었다.
그는 무엇보다 이 책을 통해 같은 사건을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전하려 했다고 강조했다.
"다수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고 소수의견도 사람마다 서로 생각이 다를 수 있습니다. 이렇게 다양한 시각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우리 사회의 여러 쟁점을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고 토론하는 그런 문화에 도움이 됐으면 합니다."
그는 그러면서 "우리 사회가 어느 한 쪽으로 편을 가르거나 생각할 여지를 너무 안 남기는 경향이 있다"며 우려를 표했다.
판결의 결론만 보고 편을 나누고 한쪽 편에서 다른 쪽을 향해 보수나 진보로 몰아가는 부분이 있다는 의미다.
그는 "다수의견 중에도 판례를 변경하거나 기존 법리를 바꾸고 새로운 법리를 선언하는 것이 많고, 소수의견에도 기존 법리를 유지하자는 것도 많아 소수의견에 많이 가담했다고 진보적이고 다수의견에 많이 가담했다고 보수적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자신을 포함한 대법관들이 소수의견을 쓰는 이유도 "다수의견만 기억하는 사회에서 소수의견을 기억하게 하고 싶은 마음으로 기를 쓰고 쓰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법률 논리도 사회 흐름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했다.
"우리 사회가 정답을 찾으려 하는데 옳고 그름은 사회에 따라 바뀝니다. 우리 사회가 변화해나가고 법률 논리도 이에 맞춰 진화한다는 걸 이 책에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