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무대 끝내 눈물 '강철나비' 강수진
내년 은퇴 전 고국 고별무대…10분간 커튼콜, 2천여 명 기립박수

"어릴 때부터 언제나 늦기 전에 그만두고 싶었어요. 무대에서 제가 원하는 대로 춤출 수 있다고 느낄 때요. 당연히 더 할 수 있지만 그건 제가 원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년이면 거의 쉰 살인데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후회나 아쉬움은 전혀 없습니다."
내년 현역에서 은퇴하는 발레리나 강수진(48)이 고국 고별무대를 앞두고 지난 4일 기자간담회에서 한 말이다.


강수진은 내년 7월 22일 독일에서 예정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오네긴'을 끝으로 30년 발레리나 인생을 마감한다. 그는 정식 은퇴에 앞서 고국에서 슈투트가르트 발레단과 함께 세 차례에 걸쳐 이 은퇴작을 먼저 선보이기로 했다. 한국에서 서는 마지막 무대다.
지난 6일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하우스에서 막을 올린 그 첫 무대는 강수진이 은퇴를 결심하면서 원한 것이 무엇인지, 그리고 은퇴작으로 왜 이 작품을 선택했는지 짐작게 했다.


이날 강수진은 50세를 바라보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의 정확한 테크닉과 섬세한 표현력, 무대를 압도하는 카리스마로 감탄을 자아냈다.
50세이면 발레리나로서는 웬만큼 자기관리가 철저하지 않고서는 근력이 떨어져 토슈즈를 신고 서기도 쉽지 않은 나이다. 하지만, 강수진은 현역 무용수로서 손색없는 기량으로 내년이면 다시 그의 무대를 볼 수 없다는 사실을 아쉽게 만들었다.
'오네긴'은 강수진의 말대로 그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은퇴작으로 더 이상의 작품은 없을 만큼 그의 강점을 다각도로 드러냈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린 천재 안무가 존 크랑코의 안무에 차이콥스키의 서정적인 음악을 입힌 '오네긴'은 주인공의 미묘한 심리변화를 춤에 섬세하게 담아내 '20세기 최고의 드라마 발레'로 꼽히는 작품이다.
러시아 문호 푸슈킨의 소설 '예브게니 오네긴'을 원작으로 자유분방하고 오만한 남자 '오네긴'과 순진한 시골 처녀 '타티아나'의 엇갈린 비극적인 사랑을 다뤘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의 대표작이자 1996년 처음으로 '타티아나' 역을 맡은 강수진을 독일에서 가장 사랑받는 예술가 중 한 명으로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이날 강수진은 날아갈 듯 가볍고, 물 흐르듯 부드러우면서 유연한 몸짓으로 사랑의 열병을 앓는 순진한 시골처녀에서부터 첫사랑에 대한 애증으로 갈등하는 고혹적 귀부인까지 시시각각 변하는 주인공 '타티아나'의 감정과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냈다.
특히 '오네긴' 역의 제이슨 레일리와 추는 속도감 있고 화려한 2인무는 일품이었다.
1막에서 레일리와 추는 사랑의 유희에서 강수진은 영락없이 첫사랑에 들뜬 처녀였다. 그의 나이가 무색할만큼 잘 어울렸다. 3막에서 뒤늦게 구애하는 '오네긴'을 밀어내며 추는 격정적인 춤과 오네긴이 떠난 뒤 오열하는 마지막 장면은 압권이다.

 
은퇴를 앞둔 발레리나의 혼신을 다한 춤과 연기에 객석을 메운 2천여 명의 관객들은 기립박수와 환호성으로 화답하며 그의 고국 마지막 무대를 배웅했다.
10분간 이어진 커튼콜에서 강수진은 눈물 대신 활짝 웃었다. 환한 미소와 함께 손을 흔들어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하지만 '강철나비' 강수진도 세번에 걸친 한국 고별 공연의 마지막 날인 8일에는 끝내 눈물을 쏟아냈다. 공연 직후 밝게 웃던 강수진은 커튼콜 때 리드 앤더슨 예술감독이 나와 포옹하자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슈투트가르트 발레단 무용수 20여명을 포함해 제작진과 스태프 80여명은 한사람 한사람 무대에 올라 강수진에게 차례로 장미꽃 한송이씩을 안기며 작별인사를 보냈다.
강수진의 마지막 무대를 보려는 팬들로 이번 공연은 일찌감치 매진됐다. 관객들의 쇄도하는 요청으로 공연 직전 '시야제한석'까지 개방했다.

글쓴날 : [15-12-02 10:27]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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