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 서거…22일 0시22분
혈액감염 의심 어제 오후 중환자실 옮겨 치료중 서거

대한민국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이 22일 새벽 서거했다. 향년 88세.
김 전 대통령은 이날 0시22분 서울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병원 중환자실에서 혈액감염 의심 증세로 치료를 받던 중 숨을 거뒀다고 이 병원 관계자가 전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일 몸에서 열이 나 서울대병원에 입원했으며, 21일 오후 상태가 악화돼 중환자실로 옮겼다.
1993년부터 1998년까지 제14대 대통령을 지낸 김 전 대통령은 올해 88세로, 고령인 데다 체력이 많이 떨어져 종종 서울대병원에서 건강검진을 받아왔으며, 그때마다 며칠씩 입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일 입원하기 전에도 이달 10일 검진 차 병원을 찾아 17일까지 입원한 뒤 퇴원했다.
김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사인은 쇠약한 몸 상태에서 발생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으로 확인됐다.


김 전 대통령이 중환자실에서 치료 중 서거한 서울대병원의 오병희 원장은 이날 새벽 병원 본관 앞 대한의원 대회의실에서 브리핑을 하고 “현재로서 사망에 이른 직접적 원인은 허약한 전신 상태에서 패혈증과 급성심부전이 겹쳐 일어난 것으로 판단된다”고 밝혔다.
이어 “원래 심장 혈관이 좁아지고 막힌 부분이 있어 과거 수차례 시술을 받았다”며 “이런 패혈증과 같은 급성 스트레스가 겹쳤을 때 심장이 함께 악화돼 사망하신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오 원장은 과거 병력에 대해 “고인께서는 2008년부터 작은 뇌졸중이 있었고 이후 반복적인 뇌졸중과 협심증 및 폐렴 등으로 수차례 서울대병원에 입원했다. 2013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반신불수를 동반한 중증 뇌졸중과 폐렴으로 입원한 바 있다”고 전했다.
 또 “원래 스탠스 시술도 받으셨고, 혈관 병이 많으셨다”며 “뇌졸중도 결국 혈관이 막혀서 생긴 병이며, 지병이 악화돼 (고인이) 사망한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은 19일 정오께 고열과 호흡곤란 증상으로 이 병원에 입원했으며, 상태가 악화돼 21일 오후 중환자실로 옮겨 치료를 받았지만 상태가 악화돼 사망에 이르렀다고 오 원장은 설명했다.
김 전 대통령은 입원할 때는 어느 정도 의식이 있었지만, 의료진은 정상적인 판단이 안 된다고 보고 김 전 대통령을 중환자실로 옮겼다. 중환자실로 옮기기 전 특별한 시술을 받지는 않았다.
오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이 입원할 당시 이런 상황을 예측했는지를 묻자 “제가 직접 3∼4년 봐 드렸지만, 워낙 고령이시고, 중증 질환이 반복됐기 때문에 누구에게나 올 수 있는 상황이었다”고 답했다.


오 원장은 김 전 대통령의 정확한 서거 시각을 22일 0시22분이라고 확인했다.


서거 당시 김 전 대통령 옆에는 차남 현철씨 등 가족이 모두 자리해 임종했으며, 자신을 비롯한 의료진이 옆에 있었다고 오 원장은 전했다. 다만 손명순 여사는 곁에 없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 현대정치를 양분해 이끌어왔던 김대중·김영삼으로 상징되는 ‘양김 시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됐다.

1927년 12월20일 경남 거제군 장목면 외포리에서 아버지 김홍조(金洪祚)와 어머니 박부연(朴富蓮)의 외아들로 태어난 김 전 대통령은 장목소학교, 통영중학교, 경남고등학교와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1954년 3대 민의원 선거에 최연소로 당선돼 제 5·6·7·8·9·10·13·14대 국회의원까지 9선 의원을 지냈다.


 야권 후보단일화에 실패한 채 통일민주당 후보로 독자출마한 1987년 12월 대통령선거에서 당시 민주정의당 노태우(盧泰愚) 후보에게 패해 2위로 낙선했다.
하지만 민주정의당ㆍ신민주공화당과의 3당 합당을 통해 탄생한 거대 여당 민주자유당에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 굴에 들어간다’고 합류, 박철언 전 의원과의 사활을 건 대결 끝에 대선후보를 쟁취했다. 1992년 대선에서 필생의 라이벌 김대중(金大中) 후보를 물리치고 당선돼 ‘군정 종식’을 이뤄내며 ‘문민시대’를 열었다.


김 전 대통령은 야당 당수 세 차례, 야당 원내총무 다섯 차례를 역임하며 평생의 민주화 동지이자 정치 라이벌이었던 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군사정권에 맞섰다. 양김의 ‘상도동·동교동’은 민주화 세력의 양대 산맥으로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1970년대 후반에는 `40대 기수론’을 내세운 야당 당수로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유신 체제에 정면으로 맞서다 1979년 총재 직무를 강제로 정지당하고 의원직에서도 제명되는 고초를 겪었다.


신군부 정권 시절이던 1980년대 들어서는 23일간의 단식 투쟁, 장기간의 가택연금 등의 모진 정치적 박해와 고난을 겪으면서도 민주화추진협의회 결성, ‘87년 6월 항쟁’ 주도 등을 통해 민주화 운동을 이끌며 군사정권 기반 약화와 직선제 개헌에 주도적 역할을 했다.
 ‘대도무문’을 좌우명으로 삼았던 김 전 대통령은 평생을 민주화 투쟁과 인권 증진의 외길을 걸으면서 “닭의 모가지를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자신의 신조처럼 군사독재 종식과 민주체제 정착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특히 재임 기간 ‘칼국수’로 상징되는 검소함과 청렴함을 표방하면서 하나회 청산과 금융·부동산 실명제 도입, 지방자치제 실시, 전방위적 부패 척결 등을 통해 사회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한 단계 끌어올리는 성과를 냈다.


그러나 이러한 업적에도 불구하고 임기 중 친인척 비리와 외환 위기에 따른 국가 부도 사태 초래로 임기 초반 누렸던 국민의 절대적 지지를 대부분 상실하며 정치적 그림자도 있다. 또한 김대중 전 대통령의 호남지역을 포위한 ‘3당합당’, 상도동으로 대변되는 ‘가신정치’는 부(負)의 유산으로 기억된다.


김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PK(부산·경남)를 지역 기반으로 삼은 민주화 세력을 일컫는 ‘상도동계’의 영원한 리더로서 오랫동안 현실 정치에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평생 거르지 않다시피한 새벽 조깅과 영문이니셜 애칭 ‘YS’는 그의 트레이드마크였다.
장례는 국가장


  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에서 영결식
  장례위원장에 황교안 총리
  국회의사당 등 전국에 분향소 설치…



정부는 이날 새벽 서거한 김 전 대통령의 유족과 국가장에 합의하고 오후 1시께 정부서울청사에서 임시 국무회의를 열어 장례 절차를 심의했다.



국가장은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확정된다.
장례명칭은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 국가장’으로, 장례 기간은 26일까지 5일장으로 정해졌다.
국가장법에 따라 장례위원회가 설치되며, 위원장은 관례대로 황교안 국무총리가 맡는다.
영결식은 26일 오후 2시 국회의사당에서 거행된다. 안장식은 영결식 종료 후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에서 엄수된다.
장지는 국가보훈처와 국방부가 유족의 뜻을 들어 결정한 것으로 전해졌다.  국가장 기간에는 조기가 게양된다.


정부는 국민이 함께 애도하고 추모할 수 있도록 자치단체가 유족과 협의를 거쳐 전국 각지에 분향소를 설치하도록 했다. 정부 대표 분향소는 국회의사당에 마련되며, 재외공관 분향소도 설치된다.
행자부 안에는 차관을 단장으로 하는 실무추진단이 구성된다. 실무추진단은 영결식과 안장식 준비, 유가족 지원, 분향소 운영, 식장 설치와 홍보 등 실무를 담당한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이날 임시 국무회의를 시작하면서 “고인께서는 우리나라의 민주화를 위해 평생을 헌신하셨으며 제14대 대통령으로 재임하면서 국가발전에 많은 업적을 남기셨다”고 회고하고, “정부는 이번 장례를 국가장으로 해서 고인의 업적을 기리고 예우에 빈틈이 없도록 최대한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정종섭 행자부 장관은 “대한민국을 성공한 나라로 반석 위에 올려놓은 위대한 지도자를 잃은 비통한 심정을 금할 수 없으며, 전 국민과 함께 깊이 애도한다”고 조의를 표했다.
정 장관은 이어 “앞으로 구성될 장례위원회를 중심으로 국가장 장례절차를 유족과 긴밀히 협의, 전직대통령 예우에 한치의 소홀함이 없도록 최대한 국가장을 지원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 22일부터 빈소를 지켰던 ‘상도동계’ 김수한 전 국회의장과 홍인길 전 청와대 총무수석은 이른 아침부터 조문객을 맞는 상주 역할을 했다.
박관용 전 국회의장도 사흘 내리 빈소를 찾았고, 지난 이틀간 외부 일정을 대부분 취소하고 빈소에서 종일 조문객을 맞았던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도 오전 8시 45분께 도착했다.
이날 오전에는 손경식 CJ그룹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 김효준 BMW코리아 대표 등 재계 인사들이 다수 빈소를 찾아 추모의 뜻을 표했다.



손 회장은 “고인은 우리나라의 민주화와 금융실명제 등 선진 제도를 도입한 훌륭한 지도자”라며 “여태까지 고생하시다가 가셨는데 앞으로도 좋은 데로 가셔서 영면하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최 회장은 “나라의 큰 어르신이 돌아가셔서…”라며 고인에 대한 깊은 애도를 표했다.
이홍구 전 국무총리와 허태열 전 청와대 비서실장, 김숙희 전 교육부 장관, 임창열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원 장관과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장인 무소속 박주선 의원, 이기택 전 의원 등 전·현직 정·관계 인사들도 빈소에서 고인의 넋을 기렸다.
박 의원은 “YS 대통령의 유지를 받들어서 통합과 화해를 하고, 의회민주주의를 발전시켜야 한다”며 “(고인의 서거에) 애통하고, 명복을 빈다”고 말했다.




윤관 전 대법원장과 권순일 대법관, 원우현 고려대 명예교수 등 법조계와 학계인사들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추모했다.
이날 오전 10시30분까지 빈소를 다녀간 조문객은 1만2천900명으로 집계됐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22일 “국방부, 현충원 관계자와 김현철 씨 등 김영삼 전 대통령 유족이 오늘 만나 서울현충원에 조성할 묘소 위치 등에 대한 협의를 마쳤다”면서 “묘소는 장군제3묘역 우측 능선에 조성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묘소가 들어설 자리는 충혼당과 봉안식장이 있는 곳으로 봉안식장 바로 앞쪽이다.
국가원수를 지낸 사람의 묘소는 ‘국립묘지의 설치 및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264㎡(80평) 크기로 조성된다.
김 전 대통령의 묘소 예정지 한참 왼쪽편으로 김대중 대통령과 이승만 대통령의 묘소가, 위쪽으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묘소가 각각 조성되어 있다.

글쓴날 : [15-11-25 14:31]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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