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평화와 안전보장을 목적으로 설립된 국제기구 유엔이 다음 달 24일 70돌을 맞는다.
15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제70차 총회를 개막해 생일 자축모드에 들어간 유엔은 지난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주요 51개국이 유엔 헌장에 서명하면서 공식 출범했다.
탄생 70년 만에 회원국은 193개로 늘었고, 전 세계에서 8만 5천 명의 직원을 거느린 거대 조직으로 발돋움했다.
현재 유엔의 예산은 연 400억 달러(약 47조 원)로 출범 후 첫해인 1946년의 2천 배에 이르고,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더라도 연간 지출액 또한 초창기인 1950년대 초반에 비해 40배 늘어났다.
몸집을 불린 만큼 활동 범위도 크게 확대됐다. 전 세계 분쟁 지역에서 평화유지활동(PKO)을 펼친 것은 물론 유니세프(유엔아동기금), 세계식량계획(WFP), 국제통화기금(IMF) 등 수십 곳의 산하기구를 통해 가난, 질병, 문맹을 퇴치하기 위한 다양한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
제8대 사무총장인 반기문 총장은 유엔 70주년 홈페이지를 통해 "유엔은 어린이 예방접종, 식량 구호, 난민 보호, 평화유지군 파견, 환경보호, 민주적 선거 지원, 성(性) 평등 등의 활동을 통해 매일 수백만 명의 사람을 위해 긍정적 변화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자평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최근 게재한 유엔 70주년 기획기사를 통해 "유엔이 1945년 창립 이후 수백만 명을 지옥으로부터 구하기 위해 도움을 줬다는 사실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지독한 가난, 충분히 치료할 수 있는 병에 걸린 아이를 지켜만 보는 일, 굶주림과 전쟁에의 노출과 같은 지옥에서 구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유니세프와 유엔개발계획을 통해 가난한 나라의 어린이에게 교육 기회를 제공하고 갓 독립한 나라의 자립을 도운 것이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부정적인 면과 한계점 또한 70년 역사에서 적지 않게 노출된 것도 사실이다.
지난 70년간 5천억 달러(약 589조 원) 이상의 돈을 쓰고도 관료주의적이고 비효율적인 조직운영 탓에 기대만큼의 성과를 내지 못한 데다 비민주적 제도와 내부 부패도 끊임없이 입방아에 오르고 있다고 가디언은 전했다.
발레리 아모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 국장도 신문 인터뷰에서 "유엔이 지나치게 관료주의적이고 개발 이슈를 처리하는 방식이 느리다는 우려가 있다"며 "조직이 비대해지면서 많은 산하기구의 임무가 겹치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유엔은 10년 전 작성한 자체개혁 보고서에서 "서로 예산을 확보하기 위한 경쟁 때문에 조직 간 협력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며 물과 에너지 이슈 하나에만 20개가 넘는 유엔 조직이 제한된 예산을 놓고 다투는 상황을 지적했다.
보고서는 운영 효율성을 높이고 내부 협력을 증진시키기 위한 '딜리버링 원' 프로그램을 개혁 과제로 제시했으나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다.
결정적인 한계는 안보리에 권력이 집중돼 있어 제각기 다른 193개 회원국의 의견을 통합할 만한 리더십을 사무총장이 갖추기 어렵다는 점이라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이를 두고 가디언은 핵심 조직인 안전보장이사회의 폐쇄적 운영을 예로 들어 "유엔은 부끄러운 독재의 소굴로 전락했다"며 "유엔은 평화의 이름으로 전쟁터에 가서 대량학살의 현장에서 방관자가 되고 만다"고 비판했다.
유엔의 한 고위 관료는 이 신문에 "강한 사무총장이 만들어낼 변화를 보고 싶지만 우리 모두 그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강력한 회원국들은 힘있는 사무총장을 원하지 않고 자신들이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사무총장을 원할 뿐"이라고 말했다.
안보리 5개 상임이사국 중 미국이 1982년 이후 이스라엘에 비판적인 유엔 결의안 채택에 무려 35회나 거부권을 행사하고, 최근 러시아와 중국이 난민사태의 근원인 시리아 내전 개입에 거부권을 행사한 것 등에 비판이 집중되는 상황이다.
문제점 지적에 대해 반 총장은 가디언 인터뷰에서 "유엔은 변하고 있고 최근에는 더욱 극적으로 바뀌는 중"이라면서 "하나가 돼 일하자는 '딜리버링 원' 프로그램이 우리 조직의 주요 동력"이라고 설명했다.
반 총장은 유엔 홈페이지를 통해서도 "우리 시대의 과제는 국경을 초월하고 협상과 조정을 통한 복합적 해결책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라며 "오직 함께 일할 때 우리는 위기를 극복하고 기회를 잡을 수 있다. 모든 나라는 크든 작든, 부자든, 가난하든 유엔에서만 똑같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