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제 폭력성이 우리의 일상…파괴 인정해야 재건할 수 있다" | |
| '침묵의 시선' 조슈아 오펜하이머 감독 방한 인터뷰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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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년 다큐멘터리 감독 조슈아 오펜하이머는 인도네시아 북수마트라 지역에서 1965년 일어난 반공 양민 학살 사건을 조사하기 시작했고 '람리'라는 청년의 이야기를 처음 접했다. 다수의 희생자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것과 달리, 람리는 처참하게 다친 채 집으로 도망쳤다가 어머니가 보는 앞에서 다시 끌려갔고 시신이 농장에 버려졌기에 그의 죽음은 학살의 증거이자 상징으로 남았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생존자와 유족들을 촬영하려다가 마을에 주둔한 군의 협박에 부딪혔고 이에 생존자들은 역설적으로 가해자들을 촬영하라고 권했다. 가해자들은 실제로 적극적으로 감독을 사건 현장으로 인도해 자신들의 살인 행각을 신나게 증언했다. 감독은 2005년까지 학살을 자행한 이들을 촬영했다. 이 모습을 담은 영화가 '액트 오브 킬링'이다. 오펜하이머 감독은 가해자들에게 학살을 재연해 극 영화로 만들자고 요청했고 이들은 흥분해서 영화를 만든다. 그리고 조금씩 그들의 감정에 미묘한 움직임이 일어난다. 이런 장면들을 람리의 동생 아디가 모니터를 통해 지켜봤다. 공포와 분노와 슬픔에 사로잡힌 아디는 감독에게 자신이 직접 가해자들을 만나겠다고 제안했다. 아디는 실제로 가해자들을 만났고 그 모습은 내달 3일 국내 개봉을 앞둔 영화 '침묵의 시선'에 담겼다. 27일 오후 동작구 사당동에 있는 수입사 엣나인의 사무실에서 만난 오펜하이머 감독은 아디가 가해자들을 직접 만나는 건 너무 위험한 일이기에 반대했지만, 아디에게 설득당했다고 했다. "이번 영화에 아디가 촬영한 한 장면이 있어요. 아디의 아버지가 바닥을 기어다니며 두려워하는 장면입니다. 아디가 그걸 보여주며 아들이 살해당한 사실조차 잊어버렸지만, 두려움만은 잊지 못한 아버지는 결국 '공포의 감옥'에서 돌아가실 거라고 했어요. 아디는 아이들에게는 그런 감옥을 물려주고 싶지 않다고 했죠. 가해자들을 만나 그들을 인정하고 화해할 수 있다면 더는 두려워하지 않고 살 수 있으니까요." 아디는 가해자들을 찾아가 자신이 살해당한 청년의 동생임을 밝혔으나 감독이 우려한 위험한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여전히 지역의 작은 권력자인 가해자들은 '액트 오브 킬링'에서 고위 인사들을 촬영했던 오펜하이머 감독 앞에서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학살자들은 그만큼 자신들이 반인륜적 범죄를 저질렀다는 인지를 전혀 하지 못했다. 도리어 학살 행위를 자랑하는 충격적인 광경은 오펜하이머 감독에게 두 영화를 만들게 한 최초의 원동력이었다. 감독은 흡사 현재의 독일을 방문했는데 나치가 아직 정권을 잡고 있는 상태에서 홀로코스트를 칭송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했다. "가해자들이 승자가 돼서 권력 쥐고 있는 이런 상황은 SF가 아니라 현실이구나, 생각했죠. 그때 이미 두 편의 영화를 만들겠구나, 생각했어요. 첫 영화가 가해자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보여주는 다큐멘터리라면, 두 번째는 가해자가 여전히 권력을 지닌 지금 사회에서 평범한 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 영화입니다." 아디가 애초 가해자들을 만나기를 원했던 이유는 그들이 죄책감을 느끼고 사과를 한다면 자신이 사로잡혔던 과거의 그림자를 벗어날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가해자들은 변명과 회피, 협박의 반응을 보일 뿐이다. 영화는 그럼에도 실낱같은 희망을 내비친다. "아디의 시도는 실패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을 통해 관객은 가해자들의 당황스러움, 수치심, 분노와 같은 복잡한 반응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들을 대면한 아디가 보여주는 공감력, 용기, 희망과 끔찍한 상황을 견뎌내는 아디 어머니의 인내와 존엄성을 만납니다. 저는 큰 그림으로는 우리의 시도가 성공했다고 생각해요." 미국인인 오펜하이머 감독은 1965년 인도네시아 학살의 발단이 된 군부 쿠데타 등 세계 각국에서 일어나는 내전을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력이 지원했다는 데 대한 문제제기를 분명히 하고 있다. 두 영화에서 인도네시아의 가해자와 피해자에 집중하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못했다는 그에게 100만명이 살해된 것으로 추정되는 이 학살에 관한 세 번째 영화를 만들 생각이 있는지 묻자 "없다"는 단호한 답이 돌아왔다. "제가 두 영화를 만들 때만 하더라도 1965년 학살은 '벌거벗은 임금님'처럼 모두 알면서도 아무도 말하지 못하는 문제였습니다. 꼬마가 '임금님은 벌거벗었다'고 외쳤듯이 제가 이야기를 꺼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이야기가 가능해졌습니다. 진실과 화해, 정의로 이어지는 다음 영화는 인도네시아 사람이 직접 만들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합니다." 감독은 차기작은 기밀 유지 서약을 했기에 공개할 수는 없지만 '뮤지컬'이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좀 더 일상적인 삶을 찍을 생각은 없느냐'는 물음에 그는 "체제의 폭력성이 바로 우리의 일상"이라고 답했다. 사회 체제와 역사의 흐름 속에 던져진 인간상을 조명하는 다큐멘터리 작가로서의 시선도, 가해자에게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재연하게 하고 피해자와 가해자를 대면시키는 도발적인 작업 방식도 변하지 않을 듯하다. "체제의 폭력성은 안타깝게도 우리의 일상생활입니다. 폭력이란 한 도시 전체를 파괴합니다. 그 폭력성이 파괴했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으면 도시를 재건할 수 없는 거죠. 영화란 우리의 모습에 대한 거울 같은 것입니다. 훌륭한 영화란 관객이 보고 놀라움을 느끼는 것일 텐데, 그건 새로운 것이 아닌 익숙한 것에 대한 놀라움입니다. '저게 내 모습인데,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지?' 생각을 할 수 있어야 다음 단계인 치유로 넘어갈 수 있는 것이죠. 저는 논픽션 영화의 새로운 형식을 계속 탐험할 것입니다. 문제들에 깊이 파고들면서 많은 변화를 일으키는 여정을 가려고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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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글쓴날 : [15-08-28 10:34] |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