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영락교회 서선종 담임목사
“‘그리스도인, 복음으로 사는 사람’ 이를 실천하는 대구영락교회”

오늘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또 너무나도 많은 것을 요구하는 시대 속에서 하나님 말씀의 능력이 점차 희미해져 가고 있는 것을 느끼는 대구영락교회 서선종 목사는 목사로서의 여러 사역 중에서도 말씀의 사역에 가장 큰 비중과 의미를 둔다. 그는 하나님 말씀의 진리를 다시 밝혀 모든 인간의 참된 소망은 오직 말씀의 회복에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자 간절히 소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고 신실된 복음을 전파하려 노력하는 대구영락교회의 서선종 담임목사를 만났다.

 

민족의 비극인 6.25때에 이루어주신 교회, 위기를 극복한 역사가 있는 대구영락교회

8.15해방 이후, 38선으로 인해 북쪽이 공산당이 집권하면서 신앙의 자유를 찾는 많은 기독교인들이 38선을 넘어 남한으로 내려오게 되어 서울에 정착하게 되었고, 이들로 인해 서울영락교회가 194512월에 창립되었다. 그런데 6.25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서울이 점령당하면서 교인들은 또 다시 남쪽으로 내려오게 되었는데 대부분의 영락교인들은 부산에 정착하게 되었고, 나머지 일부는 대구에 머물게 되어 결국, 그리스도께서 주신 생명의 복음을 전하고자 대구 땅에 세워진 60여년의 역사를 품고 있는 교회로 하나님의 믿음과 사랑으로 대구지역을 섬기는 교회로 유명하다.

특히, 대구영락교회의 60여년을 거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던 교회의 창립배경은 그야말로 우여곡절 속에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과정을 살펴보면 1.4후퇴라고 하는 195114일 일반 시민들이 마지막으로 서울을 떠나 서울영락교회 한경직 목사와 강신명 목사(숭전 대학교 총장 엮임)는 교회 선교부 대표와 함께 14일 오후 서울을 떠나 5일 낮에 대구에 도착했다. 그런데 강신명목사의 가족들이 부산으로 가게 되어 대구에서 머무르지 못한 채 부산으로 가서 가족들을 만나게 됐다.

그 이후 강신명 목사는 한경직 목사와 상의 후, 고려신학교에서 모이는 남교회 당회장 한명동목사의 허락을 받아, 장소를 대여하여 17일 주일 오후 3시에 예배를 드리기 위한 준비는 국제시장에서 영락교회 청년 몇 명을 만나 교회마다 광고를 한 장 씩 붙이는 걸로 시작되어 주일오후 예배를 드린 다음, 같은 장소에서 임시 당회로 모여 전쟁 중 영락교회는 부산에서 모이는 결의를 하였다.

같은 시점에서 대구 영락교인들은 26일에 남산동 최원명 집사댁에서 남,17명이 모여 예배를 드렸고 211일 주일 오후 2시에 대구제일교회를 통해 임시 당회장 차태화목사의 인도로 첫 주일 예배를 드렸다. 그 후 대구 기독교 청년회 총무였던 이원우 목사를 통해 기독교 청년회 구내에 있던 창고를 집회장소로 정하였고, 이원우 목사를 임시당회장으로 세우면서 대구영락교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어 지금까지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기위해 사랑과 배려, 나눔 속에 더욱 건실한 교회가 되도록 노력하고 있다.

 

성직자로서 정해진 운명

작년 20148월에 대구 영락교회에 담임목사로 부임한 서선종 목사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만남으로 운명적인 목회자의 길을 걷는다. 서 목사는 학창시절에 알 수 없는 병에 걸려 신체전체가 마비가 되는 증상에 각 곳의 병원을 찾아 완치 목적으로 치료하기를 희망했으나 서 목사에게 온곤 절망 뿐 이였다

그 런던 중 기적적으로 하나님과의 성령이 충만한 영적인 만남을 통해 믿지 못할 그의 중병이

치유할 수 있는 기회를 맛보았다.

중증인 그의 아픔을 하나님의 믿음과 사랑으로 절실한 기도 끝에 몸 상태가 좋아진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서 하나님과의 만남을 운명적으로 해석 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서 목사는 불치병에 가까운 병이 치료됨을 깨달아 하나님의 영적인 치유가 현실임을 체함 하고 운명적으로 목회자의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

서 목사는 목회자의 길을 걷게 되면서 세상의 이치를 정확히 알고 세상의 부족함을 성직자로서 채울 수 있는 방법을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한 믿음과 사랑, 그리고 낮은 자세로 이웃을 섬기는 데에서 찾고, 신실된 마음으로 주님께의 기도가 큰 감동과 희망이 된다는 것을 다시금 일깨워 줬다는 사실이 지금까지 목회자의 길을 걷는 이유라고 말하고 이 세상을 위해서 교회가 있어야 한다며 교회의 존재 이유와 그 가치에 대해 그의 생각을 밝히고 이웃과 사회를 위해 교회는 반드시 존재해야 된다고 재차 강조하며 자신의 목회 철학을 전달하였다.

 

 

대구영락교회가 걸어온 역사의 뿌리가 이웃을 위한 교역활동으로 이어져

성도님 한 사람 한 사람 애정을 갖고 소외시키지 않으며 돌보고 관리하는 것이 서 목사의 의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대구영락교회의 깊은 역사와 지나온 발지취가 현재까지 존엄하고 유지할 수 있는 원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다.

서 목사는 인간적인 목회 활동이야말로 본인이 추구하는 목회 활동으로 사회와 지역을 섬기고 배려하는 자신의 목회 철학을 다시 한 번 피력했다. 이러한 철학을 바탕으로 영락교회의 발자취와 현재까지 진행 중인 교회 활동 몇 가지를 살펴보자. 먼저 대구영락교회가 역사 속에 만든 발자취를 보면 남선교회, 여전도회, 교회학교, 농아부, 성가대, 송천 개척교회가 지금의 대구영락교회의 뿌리가 된다고 볼 수 있다.

남선교회

국내외 선교를 목적으로 초대회장 김인복 장로의 지도하에 진용(陣容)을 가다듬어 2년 간 내실을 기하는 한편, 대구시 태전동에 소재한 은광개척교회를 보조하여 40평의 예배당 신축을 하는 결실을 보았다.

2대 회장으로 황윤철장로가 이어받아 전 회원의 결속으로 30명을 유지하면서 매월 칠곡군 양목면 소재 양목중앙교회를 보조하는 한편, 대구시 장기동 소재 장기 개척교회를 도왔고, 대구시 연호동 소재 이연개척교회도 도와주었다.

 

여전도회

시작은 기록에 없으나 교회 설립이후, 1951415일 전상에 신음하는 육군병원 군인들을 위문하는 등의 활동기록을 보아, 415일 이전에 여전도회를 조직하여 피난생활에도 불구하고 희생적으로 봉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여전도회는 1981년부터 분리하여 제1여전도회, 2여전도회로 발전하여 운영하게 되었다.

 

교회학교

1951415일 부장 장희철 집사를 임명하고 황무지를 개척하듯 시작하여 복음의 씨를 뿌리고 많은 인재를 유치부, 유년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청년1부에서 성경에

의한 실천교육으로 양성했다.

이는 오늘날 대구영락교회는 예수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과 평안의 은혜 속에, 성도의 삶과 가정이 든든히 세워져 가기를 기원하고 있으며, 지금도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하는 교회로 더욱 거듭나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정신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대구 영락교회의 대표적인 교역활동은 어려운 이웃과 함께 하는 긍휼사역의 측면에서 독거노인이나 생활이 아주 어려운 분들에게 약 3~4일 정도 먹을 수 있는 충분한 반찬을 만들어 배달해 주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고 특히, 배달팀은 21조가 되어 봉사하는데, 운전봉사는 본인차량으로 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노숙자나 독거노인을 교회로 초청하여 예배를 드리고, 식사를 제공하는 사역을 감당하고 있고 현재 매주 70명에서 100명 정도의 노숙자와 독거노인이 매주 목요일 교회에서 식사를 제공받고 있다.

그리고 작년 2014년부터 연탄배달 사역으로 연탄을 사용하는 가구 중에서, 형편이 특히 어려운 분들을 돕고 있는데 이 사역은 우선 연탄을 구입할 수 있는 비용을 교인들의 자발적인 헌금을 통해 우선 충당하고, 직접 배달하는 노력봉사를 통해 이 사역을 하기 시작하게 됐다.

 

하나님의 마음으로 섬기는 것은 꿈이 있는 공동체

현존하는 모든 기독교 단체는 사회를 돌봐야하는 사명을 갖고 복지 사각지대에 지원하여 구멍 나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가야 한다. 그러한 연유로 교회가 사회를 위한 빛과 소금이라 일컬어지는 것이다. 대구 영락교회 서종선 목사는 하나님의 나라를 실천하기위해 그저 나 보다 불쌍한 사람을 돕는 게 아닌 내가 갖고 있는 능력을 그들과 함께 나눔으로서 공동체의식을 갖는 것, 그렇기 때문에 꿈이 있는 공동체를 모토로 대구영락교회 가족들은 동분서주 애를 쓰며 목표를 잃고 방황하는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에게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전달하고 그들의 가슴속에 밝은 미래의 꿈을 심어주는 목회활동으로 더 나가야 할 방향이라고 생각하며 오늘도 노력한다.

마지막으로 서선종 목사는 더 밝은 세상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으로 기도하고 실천하려한다. “자기 자신을 위해 교회 활동에 임하기 전에 먼저 사회를 돌보고 사랑을 실천하며 어두운 사회를 밝게 비추어 희망 가득한 사회로 이끌어가는 것이 하나님의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교회에서는 성공이라는 의미를 내가 원하는 성취가 성공이라 여기지 않고 나눔과 배려를 조화롭게 갖추었을 때 비로소 성공이라 부른다. 그것이 바로 내가 생각하는 성공이고 앞으로 대구영락교회의 구성원 모두가 생각하는 성공이다.”

 

글쓴날 : [15-02-23 14:19]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신문관리자 기자의 다른기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