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용문 현대차 노조위원장은 지난달 26일 현대자동차그룹과의 협상을 통해 노조 요구액의 96.2%에 해당하는 특근수당을 받아내기로 했다. 노조는 휴일특근 수당으로 46만원을 요구했고, 사측은 44만9965원을 주기로 했다.
사실상 현대차가 백기를 들고 노조의 요구를 모두 들어준 셈이다.
하지만 현대차 주말특근은 지난 주말에도 불발됐다. 현대차 울산 공장은 기계음 대신 적막이 감돌았다. 주말특근은 9주째 무산됐고, 생산 차질은 이미 지난 6일 기준으로 6만3000여대(1조3000억원)를 넘어섰다.
현대차 노조 내 1~5공장 사업부 대표는 노조 집행부가 합의한 주말특근 임금보전안에 대해 지부장의 ‘직권조인’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부족한 ‘만원의 전쟁’인 셈이다.
이들은 노조위원장의 공개사과와 함께 임금·단체협약 교섭에서 주말 특근 재협상 등을 요구하며, 주말특근을 계속 거부하겠다는 입장이다.
불만은 부족한 1만원? 진실은?
문 노조위원장이 윤갑한 현대차 사장과 합의한 내용은 ▲기존 밤샘특근 폐지 ▲주간연속 2교대(8+9) 체제로의 주말특근 전환 ▲과거 비효율 특근 관행 정상화 등이었다.
노조는 요구했던 금액보다 1만원 부족한 44만9965원을 보장받고, 1조는 오전 6시50분부터 오후 3시30분까지 8시간(20만6162원), 2조는 오후 3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1시30분까지 9시간(24만3803원) 근무하기로 한 것. 시간당 약 3만원을 받게 되는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태를 현장 제 조직 및 대의원들의 노조 집행부 흔들기로 보고 있다. 오는 9월로 예정된 노조집행부 선거를 염두에 둔 액션이라는 것이다.
이번 합의가 현대차와 노조 측이 지난 3월부터 2달 가까이 진행한 휴일특근 협의를 통해 이뤄진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현장 제 조직들은 유인물을 통해 “지금껏 어렵게 쟁취한 노동강도 완화 목적의 기득권을 모두 내준 졸속 합의”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다.
협의 당사자였던 대의원 대표들은 문 지부장이 자신들의 뜻과 달리 졸속으로 직권조인을 했다며 집행부 불신임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내비치고 있다.
탐욕으로 어그러진 노조
현대차 내에는 7개의 주요 현장 제 조직이 존재하고 있다. 강성좌파에는 문 지부장이 속한 민주현장과 민투위, 금속연대 등 3개 조직 390여명이, 중도좌파에는 현민노, 들불, 소통과 연대 140여명, 실리주의파에는 현장노동자 420여명의 조합원이 등록돼 있다.
현대차 노조 지부장은 웬만한 소도시 인구수와 맞먹는 4만5000여명에 달하는 조합원을 대표하고, 연간 200여억원 이상의 조합비(별도 적립금 포함)를 운영하는 현장 최고의 권력이다.
회사 내에선 공장장 등 고위 경영진들과 동등한 위치에 설 수 있으며, 밖으로는 국회의원, 지역 자치단체장 등 외부 고위 인사들과 교류를 갖는 특권계층에 포함된다.
지부장 선거에서 현장 제 조직 출신의 후보가 당선되면 그 낙수효과는 해당 제 조직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러닝메이트로 같이 출마한 수석부위원장, 사무국장 등은 물론 집행부를 구성하는 여러 상집간부, 각종 위원회 등 주요 요직을 해당 제 조직 구성원들이 모두 나눠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의원이란 직함만 달아도 ▲주말 특근 ▲UPH(시간당 생산속도) ▲물량 이관 ▲전환배치 등 현장 내 주요 생산현안 결정에 참여할 수 있기 때문에 막강한 권력을 자랑한다. 현대차 내에는 490여명의 대의원과 이들을 대표하는 9명의 사업부대표가 존재한다.
이외에도 노조 내에는 111명의 전임자(유급 19명, 무급 92명)가 활동 중이며, 이들은 생산 활동에 참여하지 않고 노조 사무실에서 노조 업무만 전담하고 있다. 또 교육위원, 선관위, 지역감사 등 일정 기간 노조 업무만 보는 한정적 전임자 인원도 28명에 달한다.
노조 집행을 통한 활동 경력은 활동가로서 자신의 인지도 고취는 물론 더 큰 외부 정치무대로 나아가기 위한 발판이 되고 있다.
실제로 지금까지 현대차 노조 출신 간부들은 정계나 노동계로 진출한 이들이 상당하다. 노조 지부장이나 간부로 활동하며 얻은 인지도를 바탕으로 노동계 상급단체장, 지방자치단체장, 구·시의원, 국회의원 등 외부 정치무대로 나가고 있는 것.
특히 올해는 9월에는 2년마다 한 번씩 있는 노조 지부장 선거가 예정돼 있어 7개 주요 현장 제조직간의 정쟁은 더욱 치열하게 전개될 전망이다.
결국 권력을 장악하기 위해 노노간 치열한 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끊임없는 집행부 흔들기를 통해 노조 집행부 교체의 필요성을 여론화하고, 유권자인 조합원들을 상대로 자신들의 투쟁력과 강성 이미지를 과시하고 있다는 말이다.
이로 인해 현대차의 한숨은 깊어져만 가고 있다. 노조의 요구를 거의 다 들어줬음에도 불구하고 노노간의 커져만 가는 갈등에 피해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4700개 협력업체까지 '울상'
현대차는 지난 3월 이후 9차례의 특근거부로 총 6만3000대, 약 1조3000억원에 달하는 생산차질이 발생했다. 현재까지 밀린 물량만 수출 31만4000대, 내수 5만4000대다. 이로 인해 현대차뿐만 아니라 수천 개에 달하는 협력업체에까지 영향이 미치고 있다.
현대·기아차 연관업체는 1차 협력사 400개, 2차 3000개 등 총 4700개사에 달한다. 고용인원도 현대차 직접 고용 5만여 명을 비롯, 협력업체 등에서 총 25만여 명의 직·간접 고용효과를 창출한다.
지난 한 해 동안의 국내생산수출만 해도 현대차 123만5071대, 기아차 110만7927대 등 총 234만2998대에 달한다.
한 현대차 협력업체 관계자는 “현대차의 생산량에 의존하는 협력업체들은 주말특근은 고사하고 평일근무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안 그래도 어려운 시기에 평균적으로 매출이 두 자릿수 이상 줄어든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우리는 협력업체 중 규모가 있는 편이라 그나마 상황이 나은 편”이라며 “2~3차로 내려갈수록 피해는 더욱 클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50% 가량은 이미 주말 특근이 사라졌고, 직원 급여에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현대차의 생산량에 따라 협력사들의 일감이 많아지거나 줄어들기 때문.
결국 현대차 1·2차 협력사들은 지난 8일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 앞에서 “모기업의 주말특근 불발로 부품협력사들의 피해가 말할 수 없는 지경”이라며 “1·2차 협력사의 피해는 상상을 초월하고 있고, 이는 생존권이 걸린 문제”라며 조속한 정상화를 촉구했다.
이어 “특근 거부로 생활고는 물론 장기적인 물량의 감소가 우려된다”며 “역지사지의 입장에서 특근을 정상화해 달라”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로 피해를 보고 있는 것은 비단 협력업체 뿐만이 아니다. 관련업계인 타이어 업체도 매출에 영향을 받고 있다. 국내 한 타이어업체 관계자는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 없지만 현대차의 주말특근 정지 이후로 국내 신차용타이어 수요가 줄었다”며 우려를 드러냈다.
근본적인 생산문제부터 해결해야
지난해 11월 미국에서 일어난 연비사태, 올해 4월 현대·기아차 사상 최대 규모의 리콜, 글로벌 경기침체로 인한 해외시장 성장세 감소, 엔저를 앞세운 일본차 메이커들의 경쟁력 향상, FTA 등으로 가격경쟁력을 앞세워 국내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수입차 업계. 여기에 노노갈등으로 인한 생산차질까지.
현대차가 최근 몇 년 간 이룬 노조와의 협상과 이번에 보전해준 금액을 보면 ‘갑중의 갑’으로 불리는 현대차의 이름이 무색하다. 여러 가지 악재가 겹쳐 이것저것 따질 수 있는 상황이 아닌 것이다.
현대차그룹은 국내(361만대)를 포함, 미국, 브라질 등 9개국에 730만대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글로벌 생산 규모로는 5위에 이름을 올린 상태다. 한국의 1분기 자동차 수출액은 183억9000만 달러로 수출품목 중 1위를 기록했다. 자동차 생산은 우리나라 국가경제에 매우 큰 영향을 미친다는 말이다.
세계자동차공업협회(OICA)와 업계에 따르면 현대·기아차의 자국생산 비중은 각각 42.2%, 50.1%로 글로벌메이커 중 가장 높은 수준에 속한다. 국내에서 현대차 한대를 만드는 데 걸리는 시간은 30.5시간인 반면, 해외공장은 18.6시간에 불과하다.
한편 김필수 대림대학교 자동차학과 교수는 “국내에서 경쟁력과 생산성을 높여야 해외 시장으로의 물량 이전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며 “국내생산이 절반에 가까울 정도로 높지만 어려움이 가중된다면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에는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