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甲을 향한 아우성, '乙의 반란' 어디로'
가맹본부-점주 이견…프랜차이즈법 개정 진통

지난 3월13일 부산 수영구 광안리 해수욕장 인근에서 CU(옛 훼미리마트) 편의점을 운영하던 윤 모씨(43)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경찰에 따르면 윤씨는 동생에게 “생활이 너무 힘들다. 내가 먼저 가서 미안하다”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남기고 광안대교 중간에 타고 가던 차를 세우고 바다에 투신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바다를 수색해 30분 만에 윤씨를 발견했으나 이미 숨진 상태였다.
보도에 따르면 윤씨는 2010년 9월 친척에게 돈을 빌려 광안리의 편의점을 인수했다. 적은 돈으로 창업할 수 있는 위탁가맹점 방식의 편의점이었는데 위탁가맹점은 점포 임대료를 본사가 부담하는 대신 판매 수익의 60~65%를 본사가 차지하는 구조다. 더구나 윤씨의 점포 부근에는 같은 브랜드 2개를 포함해 100m 이내에 다른 편의점이 3개나 있어 장사가 잘 안 돼 힘들어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주변사람들에게 “장사가 안 된다. 내 돈을 집어넣으며 장사하고 있다”며 고통을 호소했다고 한다.
편의점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의 자살은 이번이 올해 들어서만 3번째였다. 지난 1월 경남 거제시의 임 모씨(32), 3월 중순 경기도 용인시의 김 모씨(43)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모두 대기업 계열사가 운영하는 편의점 가맹점주들이었다.
때마침 최근엔 남양유업 본사 영업팀장이 나이가 더 많은 대리점주에게 심한 욕설을 하는 녹음파일이 공개돼 인터넷을 달궜다. 팀장은 본사에게 내려 보내는 물품을 인수하라는 요구와 함께 욕설을 퍼부어 네티즌들의 분노를 샀다. 남양유업은 해당 사원의 사표를 수리하고 지난 2일엔 홈페이지에 회장명의의 공개사과문을 게재했지만 파문을 진정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 네티즌들은 “슈퍼 갑(甲)인 본사가 약자인 대리점(乙)에게 얼마나 가혹하게 해왔는가를 단적으로 드러낸 사건”이라며 소비자들은 남양유업 제품 불매운동까지 벌이고 있다.

 

프랜차이즈법 개정 제동 걸려
편의점 가맹점주들이 잇달아 목숨을 끊고 있는 상황에서 이들의 권익을 지켜줄 법안으로 기대를 모아왔던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안(속칭 프랜차이즈법)이 끝내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4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7일 법사위가 열렸으나 금융거래정보 이용을 확대하는 FIU(금융정보분석원)법 개정안을 놓고 여야의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함께 처리할 예정이었던 프랜차이즈법안도 상정되지 못했다.
하루 전날인 6일 경제민주화 2호 법안으로 주목을 받아 온 가맹사업거래공정화법안(속칭 프랜차이즈법)은 우여곡절 끝에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통과돼 7일 이번 회기 본회의 통과를 낙관하는 분위기였지만 여야의 충돌로 무산됐다.
정무위를 통과한 프랜차이즈법 개정법률안은 심야시간대 영업 강요를 못하도록 하고, 가맹점 사업자가 계약을 해지할 경우 과도한 위약금을 점주에게 물리지 못하게 하는 내용을 담았다. 이 법안은 또 가맹계약서 체결 시 영업지역을 의무적으로 설정토록 해 같은 지역에서 과도한 가맹점을 허용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피해를 예방하는 내용, 허위·과장 광고로 가맹점주를 모집하는 가맹본부에 대해 예상매출액 정보를 반드시 서면으로 제공토록 하는 내용 등도 추가했다.
여야 원내대표는 프랜차이즈법 개정안에 대해 여론을 더 청취하고 내용을 가다듬어 오는 6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잠정 합의했다.

 

 

프랜차이즈법 개정안의 쟁점은?
프랜차이즈 법안이 산 넘어 산처럼 난항을 겪고 있는 것은 일부 민감한 조항들에 대해 가맹본부와 가맹점주가 각자의 입장에 따라 이해관계가 극명하게 엇갈리기 때문이다.
국회통과가 무산된 것과 무관하게 한국프랜차이즈협회는 6일 정무위 합의안이 통과한 직후부터 강력하게 이의를 제기했고, 전문가들도 문제점에 대해 우려를 표명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사위에서 발목이 잡힌 개정안의 주요 내용은 ▶가맹본부가 과중한 위약금을 부과하는 등 가맹점 사업자에게 부당하게 손해배상의무를 부담시키는 행위를 불공정거래행위로 규정한 것 ▶가맹본부가 정당한 사유없이 점포 이전 확장 환경개선을 강요하지 못하게 하는 한편 가맹본부의 요구로 인해 점포 환경개선을 하는 경우에는 가맹본부가 환경개선에 소요되는 비용의 40%를 부담하게 한 것 ▶매출이 비용에 비해 현저히 저조함에도 심야영업을 요구하거나 가맹점사업자가 질병 등 불가피한 사유로 인해 영업시간 단축을 요구함에도 이를 허용하지 않는 행위를 부당한 영업시간 구속으로 규정하고 이를 금지시킨 것 ▶영업지역 안에서 가맹점사업자와 동일한 업종의 직영점이나 가맹점 설치 행위를 금지한 것 ▶가맹점사업자들이 가맹점사업자단체를 구성할 수 있도록 하고 가맹본부와 거래조건 변경 등을 협의할 수 있도록 한 것 등이다.
여기에 6일 정무위 전체회의에서 논의하는 과정에서 최초 법안 발의자인 김영주 의원의 강력한 요구로 ▶가맹본부가 예상매출액을 서면으로 가맹사업자에게 제공해야 하며, 예상매출액을 과장했을 경우 가맹본부는 허위 과장 광고혐의로 형사처벌 대상이 될 수 있게 한 것 ▶가맹본부가 정당한 근거없이 기대수익을 부풀려 제공했을 때 매출액의 최대 2%, 또는 최대 3억 원을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강화한 것 등이 신설됐다.

 

가맹점주들은 ‘독소조항’ 지적
프랜차이즈 업계에서는 이번 개정안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프랜차이즈 업계의 한 관계자는 “국회에서 만든 법안은 사실상 편의점 규제용에 적합한 법안이다. 언론에 보도된 바와 같이 가맹사업자 3명이 자살한 사업장도 편의점 가맹점들이었고, 문제가 된 심야영업 강제규정, 과도한 휴폐업 손해배상 부과, 영업지역 내 동일 가맹점 설치 등도 대기업이 계열사로 갖고 있는 편의점과 관련된 것들이다”고 지적했다. 이와 관련해 “편의점 사업을 별도로 규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협회 측은 또 가맹점 시설의 노후화 위생 안전 등에 대한 고려 없는 무조건적인 환경개선 요구의 금지도 불합리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임 국장은 “환경개선은 가맹본부를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가맹점들을 위한 것이다. 한 가맹점의 이미지 저하나 실수가 전체 가맹점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므로 환경개선은 매우 중요하다”고 밝혔다.
또 가맹점주들이 단체를 구성해 가맹본부와 조건 등을 변경할 수 있도록 한 것도 이치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프랜차이즈 컨설턴트인 ㈜에프씨엠컨설팅 이성훈 대표(경영학박사)는 “예상매출액을 정확히 예측해낸다는 것도 어려운 일이다. 가맹점은 점주의 능력과 성격에 따라 매출액 차이가 크다. 아무리 최첨단의 기법을 적용한다 해도 완벽하게 예측할 수는 없다”며 “이번 개정안은 국회가 대기업 계열사인 편의점 사업본부를 규제하는 통에 다른 분야의 가맹본부들이 피해를 보는 전형적인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지는 격”이라고 묘사했다.
협회는 개정안과 관련해 최근 공식자료를 내고 “가맹점사업주는 고용주와 근로자의 관계가 아닌 상법상의 독립적인 사업자이기 때문에 단체설립의 자유는 이미 헌법에 의해 보장돼 있고, 이미 체결된 계약내용을 재협의할 수 있도록 단체협의권을 부여하는 것은 법적 안정성을 훼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CU(전 훼미리마트), GS25, 세븐일레븐, 바이더웨이, 미니스톱 등 편의점 가맹업주들의 모임인 전국편의점가맹점사업자단체협의회(이하 협의회)는 최근 성명을 내고 “국회에서 가맹사업법 개정안이 국회통과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편의점가맹본부들이 개정안의 취지를 반영하기는커녕 제도보다 후퇴한 내용으로 계약변경을 추진하고 있다”고 폭로했다.
협의회는 “가맹계약서 변경은 진실한 상생노력이 아니라 현재 추진되고 있는 가맹사업법 개정안에 대한 물타기로 규정하며 이를 전면 거부한다”고 밝혔다.

 

글쓴날 : [13-05-28 15:47] 신문관리자기자[news246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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